기억 삭제 기술과 형사책임 – 기억을 지운 범죄자도 처벌할 수 있을까?
영화 속 한 장면처럼, 범죄자가 자신의 기억을 일부러 지워버린다면 어떻게 될까?
최근 뇌과학과 약물학, 그리고 인공지능 기술이 발전하면서, 기억을 선택적으로 차단하거나 약화시키는 기술이 현실화되고 있다. PTSD(외상 후 스트레스 장애) 치료 목적으로 개발된 기억 조작 기술이 악용된다면, 범죄의 증거와 고의성 판단 기준에 중대한 혼란을 초래할 수 있다.
기억을 지운 범죄자에게도 형사책임을 물을 수 있을까?
기억 조작 기술의 현재
현재 기억을 조작하거나 삭제하는 대표적 기술 및 연구는 다음과 같다:
1. 프로프라놀롤(Propranolol)
-
PTSD 치료 약물로, 기억의 정서적 강도(감정 연결)를 약화
-
외상 기억은 남지만, 그것이 유발하는 고통이나 반응을 차단
-
일부 연구에선 기억 자체가 흐려지는 현상도 관찰
2. 신경조절기술 (TMS, DBS 등)
-
뇌 특정 영역(해마, 편도체 등)을 자극 또는 차단
-
기억 저장·회상에 개입 가능
-
향후 선택적 기억 차단 응용 가능성 연구 중
3. AI 기반 디지털 기억 조작 실험
-
뇌파와 뇌영상 데이터 기반으로 기억 재구성 시도
-
가짜 기억 생성 및 주입 실험도 병행
이처럼 기억의 삭제나 조작은 이미 치료적 목적으로 임상 단계에 접어들었으며, 기술 오남용 시 법적 문제로 확장될 가능성이 커지고 있다.
형법은 ‘기억 상실’을 어떻게 다루는가?
형법은 형사책임 판단 시 다음 두 가지 기준을 중요하게 본다:
-
사물 변별 능력 – 옳고 그름을 판단할 수 있었는가?
-
행위 통제 능력 – 그 행동을 스스로 멈출 수 있었는가?
여기서 중요한 점은 범행 당시의 상태이다. 즉, 범행 후 기억을 잃었거나 삭제했더라도, 범행 당시의 인식과 통제력이 정상이었다면 책임이 면제되지 않는다.
예외가 되는 경우는?
-
기억 상실이 범행 이전 또는 중간에 발생했고, 그로 인해 행동 통제가 불가능했던 경우
-
강제적 기억 삭제 또는 조작이 있었고, 이로 인해 자기방어권 행사에 심각한 지장이 발생한 경우
그러나 고의적 기억 삭제는 형사책임 감면 사유가 되지 않으며, 오히려 증거인멸 시도로 간주될 수 있다.
실제 유사 사례
-
약물 복용 후 기억이 사라졌다고 주장한 성폭행 사건
감정 결과, 일시적 블랙아웃은 있었으나 행위 당시의 인식은 유지된 상태로 판단 → 심신미약 불인정, 정상 형량 선고
-
PTSD 치료 중 기억 약화가 발생한 가해자
피해 사실 자체는 인정, 그러나 세부 기억이 흐릿해진 상황 → 법원은 기억 약화가 형사책임을 회피하기 위한 것이 아님을 고려해 정상 판단
향후 법적 논의 쟁점
-
기억 조작 기술의 오남용 여부
치료를 목적으로 한 기억 차단이 형사소송에서 불리한 증거를 제거하는 수단으로 활용될 위험
-
의도적 기억 삭제 시도에 대한 처벌 가능성
형사소송 중 피의자가 약물 또는 기기를 통해 기억을 인위적으로 차단하려 한 경우, 증거인멸죄 혹은 법정모욕죄 적용 논의 필요
-
신경과학 기반 기억 감정 제도 도입 필요
기억 상실 또는 조작 주장이 있는 사건에 대해 의학적·신경학적 감정 절차를 강화해야 함
결론: 기억을 잃었다고 책임도 사라지는 것은 아니다
기억은 인간의 중요한 증거이자 자기방어 수단이지만, 법은 기억 유무보다 행위 당시의 상태를 기준으로 판단한다.
기억을 조작하거나 삭제하는 기술이 발달함에 따라, 향후 기억과 형사책임 간의 법적 충돌은 더욱 빈번해질 가능성이 있다.
형사사법 시스템은 기술의 발전 속도에 대응하여, 과학적 감정 체계, 기억 조작 대응 절차, 법적 해석 기준 정비가 필요한 시점이다.
기억을 잃은 범죄자에게도, 법은 여전히 그 책임을 묻는다.
댓글
댓글 쓰기